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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 하는 식사, 성만찬 (눅 22:14-20)Faith with 안목/Sermon 2020. 10. 15. 19:44반응형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가 놓치고 또 그리워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그리우신가요? 저는, 만나면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식사의 자리가 참 아쉽습니다.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소소한 행복… 참 그립습니다. 어쩌면 제가 너무 기우가 많아서, 남들은 부담없이 가지는 이런 자리를 아직 못 갖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램은 어서 이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어서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부담없이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날들이 어서 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식구”라는 말이 있지요. 가족을 뜻하는 “식구”라는 단어도 밥을 먹는 것을 뜻하는 “식”과 입을 뜻하는 “구”가 합쳐진 말입니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은 곧 가족이라는 뜻이지요. 한 테이블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욱 알게 되고 때로는 서먹했던 관계가 풀리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 보신 적 있으신가요? 1987년에 나온, 벌써 30년도 더 된 영화인데요. 이 영화에서 서로 불편하고 오해가 쌓였던 마을 사람들이 바베트가 정성들여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서로를 다시금 이해하게 되는 일들이 그려 집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참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도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만찬을 나누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 이상의 매우 중요한 의미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그러한 내용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다만, 그 전에 아쉬운 이야기들을 먼저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 혹시 성찬식에 관련된 기억이 있으신가요?
우리 신앙에서 성찬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배학자들은 초대교회의 예배에서 두가지 중요한 기둥으로, 하나는 성경을 읽고 나누는 일, 다른 하나는 주님의 만찬 곧 언약의 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예배에서 성찬의 비중이 작아지거나 혹은 성찬이 의례화되면서 그 의미가 약해지는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제 기억 속에 있던 성찬의 기억을 몇개를 나누면, 저는 어렸을 때 자그마한 시골교회에서 부모님과 함께 주일예배를 드렸는데,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성찬에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왜 엄마아빠가 먹는 것을 나는 못먹나 했던 아쉬움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한번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시골에서는 진짜 포도주를 사용해서 발효된 포도주의 텁텁하면서 시큼한 맛에 당황했던 기억도 납니다. 또 한번은 고등학교 때 방문했던 한 교회에서 성찬식을 참여했었는데, 세례 받지 않은 사람은 참여해서는 안된다, 떡을 입에서 씹어 먹으면 안된다고 강하게 말씀하셔서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 탓인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머랄까 굉장히 엄숙한 행위, 그래서 기쁨보다는 딱딱한 의례에 참여하는 느낌을 참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님의 빵과 잔을 분별없이 참여하지 않도록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의 만찬에 담겨 있는 중요한 의미 중의 하나인 교제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함께 음식을 먹는 의미를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셨는지요? 그동안 여러분들에게 성찬식은 어떠한 의미이고, 또 어떠한 마음으로 참여해 오셨었는지요? 오늘 누가복음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성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주님과 함께 하는 성찬을 통해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축복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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