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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이유?
    Faith with 안목/Bible Questions 2020. 3. 2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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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 이유?

     

     

    (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A.산 위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과 옆에 함께 모세와 엘리야를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17:4) 말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이렇게 초막 셋을 짓겠다고 설명하지 않지만, 같은 사건이 기록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공통적으로 베드로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덧붙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은 그들이 매우 두려워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겠다고 이유는, 해당 본문에만 기초한다면, 베드로는 두려워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그냥 말한 이라고 답변할 있을 같습니다.

     

    그렇지만, 몇가지 추측, 아니 해석을 여지가 있습니다.

     

    먼저, "초막"이라는 단어입니다. 초막으로 번역된 헬라어 skene ( σκην ) tent, tabernacle 번역되는 단어(보통명사)입니다. 구약에서 성막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mishkan 이나 ohel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도 고려하면(참고글: 성막과 회막의 차이) , 베드로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장소로서 만들어진 성막을 떠올리고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순간이기에 연관성을 생각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절기 중의 하나로 장막절(the Feast of Booths)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출애굽을 기념하고, 다가올 구원의 날을 기다려 왔다는 (cf. WBC Vol 34B)에서 베드로가 말한 초막을 구약의 성막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베드로가 초막셋을 짓기 전에 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9:5a)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모습이 변화하신 사건의 이유 하나로,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대비하여,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은 제자들에게 더욱 확고하게 보여주시고 그들을 위로/격려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합니다.

    이들은 변화산 사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예수님의 빛나는/변화된 모습을 보았고,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 모세/엘리야가 예수님 옆에 서는 모습을 보았을 아니라, 하늘로부터 들리는 소리,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도 들었던 모든 과정은, 이들로 하여금 장차 고난을 대비하고 준비하기 위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러한 중요한 사건의 의미를 놓친채,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을 지고 여기에 머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찌보면, 하나님을 만나서 너무 좋은 사실에 만족하며 머물기를 원하는 우리의 모습, 예를 들어, 교회에만 머물기 원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같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의 부름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사명도, 이제 고난 당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고자 했던 이유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표현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물론, 초막셋을 짓냐고 했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올바른? 답은,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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