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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해와 한국교회의 불문율: 존중받지 못한 리더십?Thoughts with 안목/Reflection 2020. 2. 1. 01:30반응형
해석과 관련하여 재미난 글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협객들이 이야기가 담긴 "유협열전"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곽해"라는 인물은 참 재미난 인물입니다.
곽해는 젊은 시절 나쁜 일을 많이 했지만, 나이가 들어 마음을 고쳐먹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와 명성을 얻게 되자, 정부에서는 곽해를 박해하였고, 나중에는 혐의를 씌워 곽해를 살해하고 맙니다.
태사공은 "나는 곽해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외모는 보통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다. 말솜씨도 없어 정말 본받을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 같았다. 그러나, 천하 사람들 모두가, 그를 알거나 모르거나,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모두 그의 명성을 흠모하였다. 이후에 자칭 협객이라고 하는 자들은 모두 곽해의 이름을 내세웠다. 사람들이 그 명성을 흠모하면, 죽은 후에도 협객의 이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곽해는 그 명성을 오래 누리지 못하고 사라졌으니 참으로 애석하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마천, 김지영 역, 사기열전, 마인드북스, 2017)
여기까지만 보면, 곽해라는 인물은 비록 그가 젊은 날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후에는 선한 사람이 되어,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 그럼에도, 억울한 누명으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주목받는 인물을 향한 세상의 시기와 질투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곽해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습니다.
"곽해는 곧은 행실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그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한나라는 그에게 죄를 덮어 씌워 처형합니다. 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는 양날의 검이었던 셈입니다. 개인의 역량이 띄어나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 해도, 그 리더십을 조직 내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불행한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며, 곽해의 리더십을 "존중받지 못한 리더십", "조직과 화평하지 못한 리더십"이라고 해석합니다.
(출처: http://www.kyobostory.co.kr/contents.do?seq=631 )
저는 당연히 곽해를 시기한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조직 내에서 인정받지 못한 리더임에도 리더십을 발휘한 곽해가 잘못했다고 하는 해석의 관점은 참 신선했습니다.
어찌 보면, 양측 다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곽해를 시기한 사람도 잘못이지만, 눈치없이 인기와 명성을 얻은 곽해도 잘못했다는 해석을 할 수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존경하는 한 목사님께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어제 신년하례회에서 노회장 목사가 한 설교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담임목사는 부목사가 설교를 잘 할 때도 기뻐해야한다는 것이다. 귀한 말씀이다. 지금까지는 부목사가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더 잘 해서 교인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하면 부목사의 목숨줄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이 불행하게도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부목사로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어떤 담임목사는 부목사가 설교를 잘해서 교인들이 좋아하니 그를 설교에서 아주 배제시켰다. 그 목사가 현실적으로 느꼈을 위기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교인들이 부목사를 통해 은혜를 받는 것을 기뻐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품는다면 교인들도 그를 더 존경할 것이다. 과거에 어떤 교회에서 사역할 때 설교 잘 하는 목사와 그렇지 못한 목사를 교인들이 눈에 띠게 차별대우하는 것을 보았다. 부족한 목사를 더 격려하고 힘을 북돋우어주어야 하는데.. 목사뿐 아니라 교인들의 의식도 성숙했으면 좋겠다. (출처: 박영돈 목사님 페북)
곽해가 잘못했다는 해석은 한국교회의 "불문율"과 맞닿아 있습니다. 조직과 화하지 못한, 눈치없이 너무 열심히 산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니까요….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해석을 내 해석만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참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곽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미숙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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