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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Thoughts with 안목/Thinking 2020. 1. 1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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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이교도들의 출입을 거절했던 예배가 교회의 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그것은 예배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의례와 의식이 의도적이든 직감적이든 예배자의 삶과 공동체에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알렌 클라이더,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전도" 35p)

     

    저는 알렌 클라이더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는 예배자의 삶과 공동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려도 개인의 삶이 변화(단순히 삶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님)되지 않는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지 가설을 세워 봤습니다.

     

    1)예배에는 사실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없다.

     

    2)예배에 문제가 있다: 예배를 드리는 방식(예배자의 마음, 혹은 방법) 문제가 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의 저로서는 예배가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잊을만하면, 종종 나오는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 2019 6, 워런 버핏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선행사의 가격이 400만달러를 넘어 역대 최고액을 넘었다는 기사입니다. 워런 버핏을 만나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있는 만남을 위해서 400 달러 이상을 낸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워런 버핏을 만나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돈을 투자할까요? 그를 만남으로 인해 얻는 "변화"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십분 양보해도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 아비"였던 아브람은 하나님을 만나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속이는 "였던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 12지파의 아비인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박해자였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루터는 기독교 예배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하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우리는 차례로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James White, Introduction to Christian Worship, Loc 229 of 5525)이라고 말한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계시(revelation) 응답(response)라는 두가지 과정이 일어난다고 예배학자인 white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계시와 응답이 이루어지는 만남의 장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계시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배에는 힘이 있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음에도 예배자의 삶에, 공동체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결론은 하, 예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만났지만, 때에만 반짝 변화? 있고, 인간은 죄인이기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라는 가설도 상상해 봤습니다. ,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을 만났지만, 여전히 넘어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우리의 예배에 문제가 없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면, 마음은,, 하나님을 만났지만 연약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 것이라는 결론보다는,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 심증이 갑니다…

     

    예배라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 보다는 사람이 높임을 받으며,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보다는 나의 만족을 위한 시간으로 우리는 예배를 변질시켜 오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예배에 문제가 있는 같은 심증은 커가는데….

    (정말 문제가 있다면) 나는 무엇을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2020 1월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을 ,

    "그래도 여기까지 왔어"라고 말할 있게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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