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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Review with 안목 2008. 8. 1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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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유로든지 하나님과 교회를 비하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400)"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빨리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서두르는 내 시선을 붙잡은 문구이다...
     어떤 이유로든지 하나님을 비하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그 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러나, 교회는 비하될 수 있으며, 오늘날 자기성찰을 잃어버린 교회는 비하, 아니 그보다 더 심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빛을 잃어버린 촛불이나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쓸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본연의 목적과 사명을 망각한 교회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교회는 변화되어야 한다.


     내게 온누리교회는 특별하다.
     99년 3월의 첫 주일, 온누리교회에서 처음 드렸던 예배의 감동을 기억한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무지했던 내가 점차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원했고, 그 갈망과 고통의 순간의 정점에 만났던 교회가 온누리교회였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내게 온누리교회는 또다른 의미로 특별하다. 언젠가 논문을 통해 말하고 싶은 한국교회의 한 획을 그은 교회가 바로 온누리교회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에 대한 접근가능한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러던 찰나에 온누리교회의 목회철학이 담겨있다는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성공한 목사님의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넘기는 순간마다 누가 언제 보아도 좋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듯 책은 간결하면서 주장의 요점을 놓치지 않으며 그럼에도 잔잔한 감동이 있다.

     (책을 두번에 나누어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었던 전반부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서 방금 읽은 후반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ACTs 29.
     온누리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안되어 온누리교회에서는 반포 지역에 지상 7(?)층의 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특별 헌금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경매가가 낮추어졌으며 교회가 제시한 가격에 낙찰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가 사라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온누리교회는 ACTs 29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사도(apostle)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며 28장에서 마무리된 사도행전을 계속 이어 29장을 바로 지금 쓰겠다는 것이었다.
     ACTs 29에 대한 첫 느낌은 멋있었다...
     "저는 처음부터 7년 된 교인은 교회를 떠나라고 했는데, 성도들이 떠나지 않습니다. 가려고 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308, ACTs29 비전 선포식때의 설교문 중 일부)"
     지금의 나는 10여년 몸담았던 온누리교회를 떠나 방황 중이다. 교회의 외형보다는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쏟는 높은뜻숭의교회로 갔지만 아직 정착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틈틈이 강남 사랑의 교회, 강남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가보기도 하지만 당혹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하 목사님의 말처럼 가려고 해도 막상 갈 곳이 없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온누리교회의 시스템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온누리교회가 지닌 안정감과 세련됨, 정제된 느낌은 다른 교회에서 거의 발견하기 불가능하다. 온누리교회를 떠나고 얼마안되어 다시 찾았을 때 느꼈던 푸근함은 예배자체의 푸근함과는 다른 것이다. 그 날 나는 사회에 대해 무관심한채 듣기좋게 포장된 원론적인 설교를 들으며 발끈하기까지 했었다.
      온누리교회에 성령이 없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한국교회 중에서 가장 세련된 형태로 성령사역을 승화시킨 곳이 온누리교회이다. 온누리교회에는 예배의 뜨거움, 열정이 존재한다. 또한 그런 열정을 사모하며 모인 다양한 재능을 지닌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기에 온누리교회는 더욱 강력할 수 밖에 없다.
      제대로 된 교회가 없기 때문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두루 갖춘 "항공모함"같은(309) 온누리교회는 이제 "구축함"인 지역교회를 통해 전쟁에서의 승리를 확보하려고 한다. 그것을 위한 비전이 바로 ACTs 29다. 캠퍼스라 불리우는 다지역교회와 비전교회를 설립하여 온누리교회의 시스템을 지역교회, 중소교회에 전하고, 한국 아니 세계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사도행전 29장을 쓰겠다는 것이다.
     ACTs 29의 비전교회들의 운영은 "협력", "매트릭스", "팀사역", "네트워크" 등의 용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중심이 항공모함인 온누리교회에 집중된 체재로 지역 교회의 인사, 행정, 일부 교회는 재정까지 중심에서 통괄하는 시스템이다.(326-327)
     개교회주의로 인해 목사 1인의 부패로 인해 교회와 교인들이 고통받는 것을 고려해볼때 이것은 바람직한 체재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방법이다. 교회의 인사, 행정권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가톨릭의 시스템이 교황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러브소나타
     나는 개인적으로 러브소나타를 좋아하지 않는다. 온누리교회에 처음갔을때, 젊은 대학생들이 방학때 적지 않은 돈을 내고 해외단기선교를 가는 것에 지극히 부정적이었다가 단기선교로 가기 결정한 순간부터 이후까지 진행된 기적적인 순간들과 대만에서 경험했던 눈동자의 변화를 경험하고 난 뒤 단기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버린 전적이 있지만, 여전히 러브소나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러브소나타를 실행해야 했던 이유와 집회를 통해서 변화받은 많은 사람들의 간증을 보아도 그것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문화와 대중의 코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온누리교회의 작품이 러브소나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교회가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문화, 대중과 호흡해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온누리교회의 코드가 상향의 대중문화라는 점이 나는 싫다.
     러브소나타로 인해 일본인 중 단 한명이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면 그보다 더 큰 성공은 없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개독교라는 비판의 비판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있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막대한 물량과 노력을 일본에 집중하는 러브소나타가 나는 좋지 않다.
     
    비판을 위한 비판
     나도 내 논지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음을 안다. 하용조 목사님과 온누리교회가 한국과 세계에 끼친 영향의 1/100이라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좋은점보다 나쁜점들을 꼬집는 내 자신이 탐탁치 않다.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좋아하고, 그 메세지에 눈물흘리면서도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논지가 나는 싫다. 지금의 내가 가진 가시일지도 모른다. 좋은 목회자는... 어느 누구에게 가시가 되기 보다는 어느 누구에게나 귀를 열고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정용섭 씨의 설교비평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얼마전 보니 3권까지 나왔다. 국내외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는 그분의 책의 소재가 된다. 설교를 비평함으로써 발전을 가져온다면 나무랄 이유가 없는 것이지만, 1권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남을 비판하기만 하고, 자기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것같은 느낌에 꽤나 불쾌했다. 남을 비판함으로서 자신의 책을 판다는 것에 더 기가 막히기도 했다.
     
     한국교회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독교라고 외쳐도 반성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위 대형급 교회의 목사님들은 세습을 정당화하거나 기득권층의 귓가에 달콤한 소리로 사회의 부정의를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현 정권의 모습은 그러한 기독교인들이 세운 아름다운 결정체다. 부패도, 지난 잘못도 중요하지 않다. 경제를 살리기만 한다면 과거가 어떻든(BBK를  설립하고 위장전입을 해도)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 어떻든(아무리 탈세와 무법을 저질렀어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총수와 신문사 사장들을 광복절 아니 건국절에 사면하는...) 상관없다는 이기주의의 소산처럼 보인다.
     
     비판을 받고 있지만, 반성보다는 이를 외면하고 점차 정점으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도 그런 교회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 교회사에서 성령사역이라는 중요한 획을 그은 온누리교회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개독교라고 욕하는 그들과 다를바 없다.

     하지만, 나는 다른 존재이고 싶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남발하기보다는 사랑하기에 변화되기를 소망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왜냐면 교회의 머리는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아름다운 교회들이 많아지기를... 이땅에 그런 교회들로 가득한 나날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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