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with 안목
신이 존재한다면, 왜 침묵하고 있는가?
Bethel
2011. 1. 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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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은 개항기 일본에서 있었던 선교박해의 현장을 신부 로드리고의 시선과 작가의 시선으로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가장 존경받던, 20년 넘게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벌였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소식과 함께 목자를 잃어버린 일본 신도들에게 다가가고자 했으나, 그곳에서"구멍매달기"와 같은 끔찍한 고문, 박해의 현장을 경험하며, 결과적으로 배교이지만, 배교가 아닌 선택을 한 신부 엔드리고의 이야기는 고통의 현장에서 "왜 신이 침묵하는가"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던져준다.
신이 존재하는가?
신이 정녕 존재한다면 왜 침묵하는가?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순교를 당한다.
그 순교의 현장은 자신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전혀 극적이고, 감동적이지도 않으며, 순교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고문을 견디고, 성화를 밟고 침을 뱉는 등의 배교의 행위는 "믿음"을 위하여 얼마든지 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자신의 그러한 숭고한 노력이 다른 누군가. 특히나 자신이 복음을 전하러 온 일본인들에게 끝없는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여전히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이다....
로드리고 신부의 선택이 맞다고 한다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제까지 죽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이노우에, 페라리라 신부)을 통해 신앙의 뿌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외부로부터 전래되어 온 가톨릭의 뿌리는 "신부"들인데, 이들 신부들이 배교한다면, 줄기와 잎이라 할 수 있는 일본내 가톨릭 신도들도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이 가져온 신앙과 그들이 전해 준 신과 달리 일본 신도들이 받아들이는 신과 신앙은 "원본"이 아는 "변질된 무엇"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질문은 한국에게서도 낯선 질문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전래 이후로 끊임없이 "변질"논쟁을 거쳐왔고,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했으며, 심지어 자신들의 이상과 다른 기독교의 (한국신도들에게 나타난) 모습을 기독교의 원형이 아닌 무속, 유교, 불교와 같은 기존 한국 종교의 영향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각한 질문들과 생각할 거리들을 던지면서도
소설은 세밀한 묘사와 자연스런 전개 덕택에 긴장을 놓치지 않고 끝없이 질문 속으로 독자들을 빠뜨린다.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의 해답을.. 로드리고의 선택에 대한 변명을 글의 말미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본문에서 저자가 계속적으로 던졌던,,, 위의 질문들에 대해.
로드리고, 페레이라 신부의 고민에 대해. 기쿠치로의 삶에 대해 많은 시간에 걸쳐 고민하지 않는다면,
책을 읽고나서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 해결되지 못한 기분을 해소할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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