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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이어: 동역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 6:1-15)
    Faith with 안목/Sermon 2020. 8. 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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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tu.be/W0rCNGGbsKw

    여러분, 혹시 매일 보던 혹은 경험하던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갑자기 새롭게 보였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이 어느 순간 갑자기 새롭게 보일 때, 창 밖을 내다 보면 늘 익숙한 풍경이 어느 순간 갑자기 달라 보일 때,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달라 보일 때… 익숙했던, 낯익었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 바로 그 순간은 단순히 새로움을 넘어서 소중함을 되새기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변해버리면서,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누려 왔던 소중함들을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이기에,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면서 깨닫는 소중함은 그 어느때보다 더 특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빼앗겨서 소중함을 깨닫기 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낯익지만, 낯익은 것을 때때로 낯설게 바라봄으로 인해 그 소중함과 특별함을 더욱 깊이 경험할 수 있으면 참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그러한 접근, 곧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아마도 성경을 많이 읽으신 분들일수록 이러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오병이어로 불리며 많은 분들께 익숙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고 또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가 되었던 사건이지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의미들이 있는 중요한 사건이며,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꾸준히 읽으시는 분들께는 아주 익숙한 그런 내용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또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만약 그런 이유로 그 소중함을 놓치고 있다면 그것만큼 또 안타까운 일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낯익은 것이라 할지라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성경읽기가 필요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낯익은 성경본문을 낯설게 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다면,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는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성경을 읽으면서 개역한글 성경이 참 익숙해졌습니다. 다른 책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무언가 다른, 권위있는 듯한 문체와 표현, 그리고 그러한 문체와 표현을 통해 증거되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 개역한글이 아닌 다른 성경들, 예를 들어 현대인의 성경이라든지 표준새번역 등은 그 당시에는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색할 뿐 아니라, 머랄까 무언가 불경스러운 일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도 했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지나서 성경은 한글이 아니라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처음 쓰여졌다는 사실을 배우고, 또 우리가 읽는 성경책은 번역된 번역본이라는 점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서 다른 번역본들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성경 번역본들을 읽는 것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이전에 익숙한 문체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성경에서 선포되고 있는 메세지에 더 주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번역본들을 비교하면서 읽다 보면, 서로 다른 표현과 번역의 차이점 등을 통해서,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유익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성경번역들을 읽는 것은 의미가 암ㅅ고 또 팔요한 일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성경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새 교육부에서 바울서신서 읽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바울이 쓴 편지들을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까, 각각의 서신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의 내용이 에베소서에 있구요, 고린도후서의 내용이 갈라디아서에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지역, 수신자들을 대상으로 쓴 편지이지만, 그 안에 내용이 중첩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머랄까 눈이 열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복음서 같은 경우에는 이렇게 비교하면서 유익이 더 깊습니다. 혹자는 복음서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오히려 관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이야말로 이것이 거짓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가 경험한 내용을 진실되이 기록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어떻게 복음서마다 차이가 나는지를 주목하는 것은 참 유익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오병이어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마가복음 6장, 누가복음 9장, 요한복음 6장에 각각 기록된 오병이어 사건을 비교해서 읽으면,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나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는 좀 독특한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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