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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예배드리실 준비되셨습니까? (눅 8:26-39)Faith with 안목/Sermon 2020. 8. 6. 19:55반응형
지난 3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온라인예배에 대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고민했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예배의 참여자들이 예배의 시청자가 아니라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사실 예배의 인도자로서 코로나바이러스와 상관없이 늘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지요.
제가 대학생때, 공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건물에서 매주일 예배를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의자가 뒤로 살짝 기울어지는 극장과 같은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가 아니라 마치 음악 공연 혹은 강연장에 온 듯한 느낌에 위화감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이건 아닌데” 라는 느낌 뿐이었지요. 나중에 예배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을 때,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습니다.
예배를 일종의 공연이라고 가정하면, 공연자는 바로 예배를 드리는 회중입니다.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고, 설교를 하며,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은 공연자가 공연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프롬프터이지요. 정치인들이 연설할 때 보면, 양 옆에 투명한 판이 있지요. 거기로 글씨가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도 원고대로 말할 수가 있지요. 그러한 장비가 바로 프롬프터입니다. 즉 예배인도자는 회중이 예배자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돕는 역할이지요. 그리고, 공연의 관객은 단 한 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예배인도자와 예배참여자가 모두 한 마음으로 드리는 공연과도 같다는 것을 배웠을 때, 그제서야 제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혹 예배에 참여하는 일부 사람들은 예배의 인도자가 공연자이고, 자신들은 그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찬양인도가 좀 별로인데, 오늘 설교가 좀 별로야. 라며 예배를 평가하며,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의 관객을 자처하는 일을 할 때가 있지요. 그런 점에서, 예배자가 될 지, 예배의 관람자가 될지는 사실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공동체가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드리지 못하는, 그리고 그로 인해 여러가지 불편함이 우리에게는 많지만, 적어도 단 하나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예배자인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예배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이전에는 주일에 교회건물에 오는 것만으로 예배자가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건물에 모여서 예배자로서 예배를 드렸는지는 사실 별개의 문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교회 건물이 아니라 집에서 예배드리는 상황에서 이제 우리가 예배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입니다. 즉,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예배자로서 우리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게, 아니 돌아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예배자이신 여러분, “예배 잘 드리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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