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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독교 영화, 노아 Noah 2014Review with 안목/Movie 2014. 7. 8. 10:41반응형
엄밀히 말하면, 영화 <노아>는 반기독교 영화라고만은 볼 수 없다. 애당초 종교적 교화를 목적으로 한 영화도 아니고, 66권의 성경 중 몇장에 안 나오는 "노아"와 대홍수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여 감독이 멋지게 상상해 낸,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 노아의 이야기를 (예고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현대 영화의 뛰어난 CG와 헐리우드의 (자본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영상편집으로 만나기를 바랬던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적인 교훈을 영화 <노아>를 통해 만나고자 했던 이들에게는 이 영화는 "반기독교"적이다.
영화는 중간중간 기독교의 세상창조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신에 도전하는 인간군상의 모습과 신의 뜻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아를 집중조명함으로써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메세지는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다. (이후 스포가 있습니다.)
1. 침묵하는 신
기독교사에서 침묵하는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도전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신실한 기독교인들에게 창조주는 침묵하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는 하나님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은 침묵하는 신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세상의 죄악이 창궐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정화를 계획하지만, 노아와의 대화 혹은 관계를 통해 완전한 세상의 종말이 아닌 구원을 예비해 놓는다.
그러나, 영화 <노아>가 그리고 있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징벌만을 내리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정작 인간의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 노아가 위태로울 때 기적의 순간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노아와 하나님간의 어떤 관계가 있다고 단정짓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계시는 꿈을 통해 나타난다... 근데 계시인지 꿈인지 어케 구분하나??>
꿈과 환각 속에서 나타나는 계시는 분명한 관계를 그리기에는 너무 약한 매개체이다. 그 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노아>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따라서, 영화 속 <창조주>는 그 뜻을 인간에게 분명하게 말하지 않거나 침묵하며, 노아처럼 인간의 해석을 거쳐야만 '추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2. 주체는 인간
인본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사의 주체는 인간이다. 이와는 달리 성경과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일을 행하는 agent는 인간이지만, 모든 역사 흐름을 관장하는 이는 하나님이다. 영화 <노아>는 기독교의 소재를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세계관보다는 인본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심판이 임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두발가인의 연설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사고가 어떤 것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We are MEN!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인간의 독선과 오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신의 뜻을 명확히 알지 못한채 패륜의 길을 선택한 노아와 두발가인의 대결을 통해서 전해지는 메세지는 과연 누가 더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자손을 살해하는 패륜과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외침의 갈등 속에서 패륜을 지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발가인은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3. 타락한 천사 네피림의 존재.
네피림의 등장은 이 영화가 얼마나 성경에서 빗겨나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알 수 없는 존재, 네피림... 거인들이라고 불리고, 타락천사라고도 해석되는 그들의 존재와 역할은 상당히 흥미롭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인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를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육지와 하늘의 모든 동식물들을 담을 수 있을만큼 큰 방주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고민을 시나리오 작가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네피림을 등장시켜 '인간적으로' 잘 풀었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인간사에 나타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고능력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것을 어떻게든 인간 사고 범위 내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없고 해석할 수 없는 저 너머의 것을 인정함으로서 피조물임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 그러한 태도는 맹신으로 비난받을 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기독교에서의 가르치는 믿음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피림의 절대방어선
네피림의 등장이 가져오는 또 하나의 문제는, 마지막 방주를 두고 네피림과 인간의 대결,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구원이 성경과는 전혀 관련없는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배우들이 성경과 관련이 없거나 곡해라고 불릴 정도로 재연되고 있다. 가장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해결하는데, 그 상상력이 결국 성경을 통한 신의 이해를 저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4. 노아의 고민
영화 노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성경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노아의 고뇌이다.
영화 <노아>에서는 모든 인류가 수장될 때, 노아는 괴롭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확하게 계시되지 않은 계시를 바탕으로 결정을 하고, 최후의 인류마저 없어져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은 노아라는 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잘 담아낸다.
분명하지 않은 관계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고민에 빠진 노아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모든 사건을 시간순서로 그대로 담지 않는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빠진 시간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시나리오 작가는 이 부분을 창의적으로 잘 해석해 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노아>의 고민은 성경에서 나타나는 노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르다. 성경 속 노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묵묵히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해 낸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순종하는 자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노아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아와 하나님의 관계가 영화에서는 누락되면서, 노아의 고민이라는 상상적 매개체가 등장하고, 이것이 영화의 개연성을 높여줄 지는 몰라도, 성경의 노아를 이해하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5. 기타 등등
몇가지 재미있는 점들이 기억에 남는다.
잘자라 코자라~
먼저 그 많은 동식물들을 어떻게 보관했을까도 방주의 크기와 관련된 중요한 질문이지만, 온세상이 잠길정도로 오랫동안 내린 비 속에서 방주의 탑승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라는 질문을 "수면"이라는 방법으로 해석한 것은 나름 재미있었다.
두번째로 성경의 기록에 따르자면, 함과 야벳은 방주에 탑승할 때 이미 아내가 있었다.
왜 나만 혼자에요???!!! 나는 모태솔로라구요...
함의 외로움이 노아가 인간타락을 다시한번 목격하고, 아버지를 향한 함의 분노와 도전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그들에게 아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셈과 일라의 두 딸을 통해 가족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참신하지만, 근친의 불편함이 있다. (어차피 8명의 가족이서 자녀를 낳다보면 근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긴 했어도..)
마지막으로 아담과 이브의 유물, 뱀껍질을 이용한 축복...
마치 뱀이 키스하는 듯한... 축복의 도구로서 뱀껍질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상징이 가지는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는다. 뱀의 상징은 유혹에 진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그것을 통해 자손을 축복한다는 것은 결국 뱀과 인간의 관계, 즉 다시 말하면 악(사탄)과 인간의 관계일 수도 있는데,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불편하다.
차라리,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대홍수를 바탕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다른 전설이라도... 전 세계에 대홍수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은 굉장히 많이 분포되어 있다. 융이 이야기한 것처럼 '원형'의 존재에 대해 고민할 정도로 많다. 만약 그러한 소재들 중 하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면 반기독교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영화는 러셀 크로, 앤소니 홉킨스와 같은 대배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크게 선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 영화라는 탈을 썼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다양한 형태의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기독교적 메세지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찝찝한 느낌과 실망을 안겨주었을테고,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역사를 기대한 이에게는 여전히 신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었을테니... 이래저래... 아쉽기만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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